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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진도여행기

진도여행기

코로나19 1년을 넘게 일상을 조여왔고 엄마인 나는 숨돌릴 틈없이 2021년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던 그때, 글과 그림으로만 알 고 있던 진도를 가보겠냐는 제안에 혹하여 내 정신세계의 주춧 돌인 아버지의 고희 생신도 못 챙겨드리고 방문했던 그곳의 기억을 다시 꺼내 본다.

, 사진 | 노민아

 

진도 앞바다


진도라는 곳과 함께 생각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는 진도 사진과 특산품 진돗개, 전복을 외운 것 같다. 세기가 바뀌고 학부모가 되었을 때는 진도의 팽목항을 뉴스에서 보았고 최근에는 송가인으로 마무리되는 소리의 고장으로 진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진도에 간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팽목항을 방문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일부러 피했다. 몇 년 전 멋모르고 따라간 목포 신항만에서 세월호의 큰 선체를 멀리서 마주했을 때부터 눈물이 멈추지 않고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힘들었던 기억이 나의 진도 첫 여행에서 팽목항을 제외한 이유다. 이 여행기에서는 울돌목과 운림산방, 진돗개 테마파크 세 곳의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저 편으로 울돌목의 소용돌이가 보인다
 


해남반도와 진도섬 사이에 유리병의 목처럼 갑자기 좁아지는 해로를 울돌목이라고 한다. 이를 한자로 바꾸면 우리에게 익숙한 명량(鳴梁)이라는 단어가 된다. 진도타워에서 내려다보니 진도대교 아래에 거칠 게 몰아치는 소용돌이를 볼 수 있었다. 망원경으로 소용돌이를 살펴보니 영화나 드라마로 수없이 보았던 소용돌이 치는 바닷물 그때의 그 느낌보다 더 섬뜩함이 느껴졌다. 글로 그림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전달함에 한계가 있는 광경이었다. ‘저곳을 아무렇지 않게 건너왔구나!’라고 놀라며 생각해보니 진도대교에 엄청난 힘이 숨어있었다. 진도대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이다. 사장교란 다리 아래 교각의 거리를 더 벌릴 수 있어 미관이 아름답다고 설명되는데, 진도대교는 미관보다 소용돌이치는 물길 때문에 사장교가 아니면 다리를 놓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진도대교는 무지개 위를 차로 달리며 바다를 날듯이 건너는 다리였다. 그렇게 꿈 같은 다리를 가지고 진도는 행복해졌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저런 생각에 떠날 수 없어 바라보던 그 바다에 배가 한 척 눈에 들어왔다. 좀 전에 물을 따라 흘러 갔던 배였는데, 지금은 돌아오고 있었다. 물살은 배가 거슬러 올라온다고 말하는데 배는 오도 가도 않고 그 자리였다. ‘! 저것이구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이 순신 이야기로 많이 보고 들었던 그 물길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방금까지 진도대교의 기술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모터의 힘으로 기름 먹고 가는 배도 거스르기 어려운 그 힘을 보니 인간의 한계가 다시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게 진도의 울돌목은 내 마음마저 휘저어 소용돌이치게 했다.


운림산방

 

울돌목에서의 번뇌를 잠재울 곳이 운림산방이었다. 십 년의 혹독한 육아기를 마치고 우연히 시작한 미술 활동이 처음부터 즐거웠던 건 아니었다. 작품 완성에 대한 부담감에 몇 년을 헤맸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지금은 부담감보다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술에 아주 작은 관심이 있는 나도 진도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그리고 싶었는데 미술의 대가는 오죽했으랴. 진도에서 태어난 소치 허련이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에 내려와 초가를 짓고 운림각이라 이름 붙이고 제작 활동을 했다고 한다. 원래 연못과 가옥 모습은 남아있지 않는다는데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래도 산을 등지고 펼쳐진 평지의 운림산방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연못을 보 니 마음이 평안해지며 그리고 싶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짧은 바람결에 옛 신선들의 마음을 잠시 느끼며 여행의 피로를 잠시 풀어 보았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또 하나의 장소였던 진도개테마 파크’(진돗개라 표준어이나 지명을 살리기 위해 이 표기를 사용한다고 한다.)는 아이들의 동심을 이 기지 못하고 방문하였다. 동물원이 아이들에게 잘못된 사고를 심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피하던 유별난 엄마였지만 여행지에서는 아빠를 핑계로 얼렁뚱땅 넘어가 줬다. 도착하자마자 새끼 진돗개에 빠져드는 아이들 뒤에서 너희의 손길이 강아지에게는 힘들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 잔소리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잠시 후 나이 드신 어르신들과 진돗개가 짝을 이뤄 여러 가지 묘기를 보여주는 공연은 시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동물권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고 순서마다 말하는 사회자의 이야기에 어울리게 공연에 비협조적인 진돗개 한 마리를 잡으러 다니느라 바빴던 어르신을 보니 안타깝기까지 했다. 이분들이 이 공연을 언제부터 했을까? 진도대교가 놓이고 이 공연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았을까? 옳고 그름을 떠나 변해버린 사회에서 삶을 유지해 나가려는 공연단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진돗개 테마파크 개선을 위한 연구용 설문 조사는 사은품을 받지 않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답변을 작성했다.

 

진도를 말로 사진으로 설명하기에는 나의 언어 능력과 사진 기술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최대한 내 능력을 갈고 닦아 빠른 시일에 다시 진도를 찾는다 한들 그 매력을 다 전달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우매한 내 눈에도 과학적 경제적 가치가 오랜 역경을 이겨낸 진도 자연이 주는 매력을 성형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순간을 영원토록 간직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품고 산다. 그래도 그 어리석음으로 글과 그림을 남겨 그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본 진도를 동작MOM 매거진에 알리며 나도 그런 꿈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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