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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윤리와 가치] 삶과 죽음의 밥상, 그곳에 노동이 있다

삶과 죽음의 밥상, 그곳에 노동이 있다

 

고소하고 달달하고 짭조름한 설명하기 복잡한, 맛있는 향이 나의 후각 세포를 자극했다. 구멍난 한지 창호를 타고 들어오는 강렬한 냄새에 그만, 무거운 눈꺼풀이 조금씩 떠지기 시작했다. 눈을 반은 감은 채로, 냄새를 따라 가보니 주방은 제사 음식을 만드느라 굉장히 분주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말로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음식이 길고 네모난 밥상 위를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엇을 집어먹어 볼까 눈치를 보며 그렇게 주방을 서성이는데, 그런 나를 보고 어른들은 일찍 일어났다며 크게 될 것이라 칭찬을 했다. 배고파서 눈을 뜬 것이라 굳이 말하지 않기로 하고 칭찬을 즐기기로 했다. 배고픈 자가 대성하리라~!

 

| 최유라(난설헌)

 

주방을 나와 문 열린 안방을 문지방 너머로 바라보았다. 켜져 있는 TV 속에는 문워크를 선보이며 마이클잭슨이 화려하게 춤 동작을 이어가고 있었다. 너무나도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저 춤을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 나에게 아 빠는 제사가 시작되니 방에 가서 사촌들을 깨우라는 미션을 주었다. 그렇게 다들 비몽사몽 하나 둘씩 방에서 걸어 나왔다. 익숙한 듯 나이 순으로 줄줄이 복도에 섰다. 절만 몇 번하면 밥상 위에 있던 저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제사가 시작도 전에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제사상이 준비되었다며 밥과 국을 들고 오 라는 큰아빠의 외침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엄마가 천천히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밥과 국, 수저가 놓인 작은 상을 들고 엄마가 제사 음식이 차려진 방으로 사뿐사뿐 걸어 갔다. 음식이 제사상에 올려진 후, 상을 그대로 든 채로 문워크를 선보였다. 생각났다. 그랬다. 마이클잭슨은 분명 한국의 제사문화를 본 후에 그 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봤다. 뒤로 걸으면 운동 효과가 두 배라는데, 조상들은 그 효과를 일찍부터 알았을까. 엄마가 열심히 뒤로 걸어 나가는 사이, 아빠는 액자 속 사진을 가리키며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조, 증조할머니, 할아버지를 설명했다.

 

절만 연거푸 여러 번 했다. “이번에는 이 분을 위해 절을 올립니다.” 누구에게 한다는 건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음식 생각밖에는 없다. 눈치를 보고 옆 사람의 속도에 맞춘다. 무릎이 아파져 올 때쯤 이 기나긴 의식이 끝났음을 알게 된다. 나이 순대로 안방을 들어간다. 곧이어 엄마들은 음식을 나른다. 밥 상 위에 음식들이 나를 반겨준다. 허기진 배를 채운다. 어른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옛 기억을 밥상 위에 꺼낸다. 웃었다 화냈다 울었다 소리가 작아졌다 커졌다. 소란스러운 안방을 탈출해 주방으로 간다.

 

먹을 거 더 필요하냐는 질문이 문지방을 넘자마자 들려온다. 주방은 여전히 분주하다.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대화할 틈도 밥 먹을 틈도 없어 보였다. 안방에서 후식 좀 챙겨달라는 말이 들려온다. 과일을 씻고 깎는다. 그릇에 담아낸다. 귀찮게도 상 위에 담는다. 조그마한 상 위에 얼마나 올려진다고. 그렇게 왔다 갔다를 여러 번 반복한다. 주방에는 한 숨 소리만 가득한 채 고요했다. 주방과는 별개의 세상인 안방은 고요함과는 결별을 선언한 듯 희노애락이 공간을 채웠다. 이제는 이 기억 마저도 먼 과거같이 느껴진다.

 

분주한 장례식장. 음식을 나르고 식탁 위에 놓고 술을 가져다 주고, 음식을 치우고 음식을 나르고 식탁 위에 놓고 술을 가져다 주기를 반복 하며 기계처럼 돌아갔다. 음식을 찾아 주방을 들락날락했던 기억은 어느새 과거형이 되었고 나도 어느새 다 큰 딸이라는 이유로 이 공장의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되었다. 안방에서 술을 기울이며 희노애락을 공유하던 다섯 형제는 장례식장이 떠나가라 울었다. 밥상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추억했다. 울었다. 화냈다. 그리워했다. 곡소리에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그런 저들을 뒤로 한 채, 한산한 시간에 며느리들이 모였다. 소리도 크게 내지 못한 채 옆 공간 모인 며느리 들은 서로에게 화내기 시작했다. 누가 더 그간 힘들었는지에 대해 말하며 서운함을 토로했고 눈물을 훔쳤다.

 

옆방에서는 다섯 형제가 아버지의 애창곡이라며 세상이 떠나가라 노래를 불렀다. 아주 크게. 죽은 자의 밥상에서도 산 자의 밥상에서도 여성은 쉽게 배제되고 비가시화되었다. 이야기조차 되지 못했던 이들의 노동은며느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지 못했고엄마라는 이유로 당연시 되어왔다, 이 경험이 단지 누군가 한 사람 만의 이야기로 치부되거나 개인의 서사로 환원 되는 것이 아닌 공동체의 감각으로 가져갈 수는 없을까. 답습되는 불평등에 균열을 내고 화합과 공존이 존재하는, 밥상을 둘러싼 노동의 새로운 상상을 꿈꿔본다.

 

난설헌(최유라)

자유를노래하는지구의방랑자로지구와이웃을지키기위해고군분투하는녹색시민입니다. 기후위기시대, 더욱이비가시화될존재들의이야기에기울이는듣기의정치를수행하려노력하며살아가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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