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맘 생각] 2살, 내 친구 한나를 소개합니다!
두 살, 내 친구 한나를 소개합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나라가 생겼다. 캐나다 동부에 있는 핼리팩스라는 작은 도시다. 지구본으로 보면 한
뼘 정도 떨어진 거리인데 18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나를 이모라고 불러주는 내 친구 한나를 만나러 꼭 가고야 말거다.
글·사진 | 배정희(예지엄마77)
큰 딸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7년 지기인 단짝친구가 있다. 같은 아파트라서 반찬도 나눠 먹고 내 집처럼 드나들며 지낸 오래된 이웃사촌이다.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늦둥이 셋째딸이 작년 5월에 태어나고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이민이 늦어지고 있었다. ‘에이 가야 가는 거지’ ‘떠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어’라고 생각해왔던 그 날, 10월 5일이 오고 말았다. 내 친구 한나가 살던 504호에는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원래부터 아기를 좋아하는 나는 매일 같이 그 집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내 나이 올해 마흔다섯. 사춘기 갑질로 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찜쪄먹는
큰딸 때문에 힘든 나에게 두 살배기 친구가 생긴 거다. 눈만 뜨면 나가자고 신발을 들고 현관 앞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내 친구 한나.
매일 매일이 아쉬웠던 나날들
아침 9시 아이들이 학교에 가거나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면
나는 한나 엄마에게 카톡을 보낸다. 오늘은 외출할 일 없냐고 내가 한나 봐줄 테니 볼 일 보러 갔다오라며. 내 하루 일과는 한나랑 노는 게 우선이고 남는 시간에 집안일을 한다. 우리
애들은 엄마가 한나랑 놀고 싶어서 그런거 아니냐고 그런다. 맞다. 내가
한나를 더 좋아하는 거 같다. 한나는 엄마, 아빠, 언니, 물, 빠방, 맘마 정도의 말 밖에 못 한다. 아직 나를 이모라고 부르지는 못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우리 사이엔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한나가 나가자고 하면 언제나 콜인 5분 대기조 ‘비눗방울 이모’니까. 한나는 누구처럼 말대꾸도 안하고 문도 쾅쾅 안닫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소리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난 한나가 좋다. 같이 놀아주기만 하면 되니까.
내 핸드폰에는 한나 사진 폴더가 있다. 한나는 뽀로로나 아기상어보다 자기가 나오는 영상을 좋아한다. 한나랑 놀고 나면 집에 와서 한나 엄마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보낸다. 떠날 걸 알기에 지금의 모습을 남겨두고 싶어서 촬영하면서도 “캐나다 가도 이모 얼굴 목소리 잊어버리면 안돼”라는 멘트를 꼭 넣었다. 3~4 살 때 기억이 없다는 걸 안다. 그러면서도 한나가 내가 자기랑 놀이터에서 맨날 놀고 기저귀 갈아주고 밥 먹여준 걸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래도 요즘엔 영상통화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진첩에 나랑 한나랑 같이 찍은 사진은 한 장 도 없었다. 엄마들이 아이 사진만 찍어주는 것처럼 ...
친구가 떠나던 날
떠나기 며칠 전부터 한나 목이 붓고 열이 나서 고생을 많이 했다. 코로나
검사도 받아야 하는데 매일매일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검사하러 가기 전 날 컨디션을 회복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한나네 가족 모두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며칠 뒤 늦은 밤 난 한나가 있는 봉천동
외할머니댁으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찹쌀파이를 구워서 준다는 핑계로 한나를 한 번 더 보려는 속셈이었다.
마지막으로 한나를 꼭 한번 안아보고 싶었는데 차마 그러지 못했다.
“이모가 코로나 끝나면 캐나다 꼭 놀 러 갈게. 잘가”라며
쿨한 척 볼만 한번 쓰다듬어 주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흔들고 빨리 자전거 페달을 굴렸다. 돌아서자마자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 콧물에 마스크가 젖어서 잠시 자전거를 한쪽으로 세웠다. 한나 엄마가 왜 그렇게
빨리 갔냐고 고맙다며 캐나다에서 꼭 만나자고 메시지가 왔고 나도 답장을 하며 코를 훌쩍거렸다. 밤이라서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한나와 마지막 그네 타기 |
우리 가족에겐 1~2년 안에 캐나다로 여행 갈 목표가 생겼다. 위드 코로나가 되면 팬데믹 상황이 잠잠해질 거라고 믿고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때는 4살 한나한테서 이모라는 말도 들을
수 있으려나? 영상통화도 자주 해서 내 얼굴 안 까먹게 할 거니까 걱정은 없다. 맘 같아선 떠나는 날 공항까지 따라가고 싶었 는데 꾹 참았다. 눈물의
환장 파티가 될 게 뻔한 일이었으니까.
18시간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마스크를 쓰고, 그 어 린 것이 답답한데
잘 갈 수 있을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다음 날 한나 엄마로부터 캐나다에 잘 도착했고 자가격리를 위한
지정 숙소에 있다고 몇 장의 사진과 짧은 메시지가 왔다. 정신 좀 차리고 연락한다고 해서 다음 날 영상통화를
하게 되었다. 한나가 우리 집에 오면 데리고 놀던 아가 인형을 보여주며 “한나 뭐 하고 있었어? 맘마 먹었어?”라고 물으니 한나가 “웅” 이라고
짧게 대답한다.
인천 공항에서 한 컷, 이렇게 보니 정말 아기다. |
“한나야, 이모랑 놀이터 가야지?” 하는 순간 주책 맞게 또 수도꼭지가 열렸다. 우리 딸이 엄마 우냐며
나를 놀려 댔다. 한나도 내가 우는 게 보이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이모가
캐나다로 놀러 갈게 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한나 엄마가 왜 울고 그러냐며 이래서 영상 통화할 수 있겠냐며 핀잔을 줬다. 코로나가 제발 빨리 잠잠해져서 하늘 문이 열 리는 날이 오길 바라며 한나 만날 준비를 해야겠다.
우리 한나는요.
눈만 뜨면 놀이터 가는 걸 좋아해요. 젤 먼저 제가 사준 핑크 색 버블건으로 비누방울 놀이를 제일 좋아하고요. 큰 놀이터에 빠방을 타고 핸들을 돌리고 바닥이나 나무위에 개미들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작은 놀이터에선 작은 미끄럼틀을 타고 단지내 어린이집 아이들이 바깥활동 할 시간이면 그 틈바구니에 끼어서 같이 노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을 좋아해서 지나 가는 사람마다 손을 흔들고 아는 체하고 멍멍이는 보는 것만 좋아해요. 가까이 오면 무서운지 얼굴을 찌푸리며 싫다는 표정을 짓는 답니다.
한나야, 이모가 정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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