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대해 이야기해요_엄마! 우리 오늘 뭐해?
눈을 뜨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어제도 11시가 다 되어서야 아이를 재우고, 빨래를 널고, 집안을 대충 정리하 고,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구경하다 결국 2시에 잠들었다. 곤히 잠든 딸아이를 보니 피곤한지 금방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오늘은 날씨도 좋지 않으니 집에서 하루 종일 있었으면 좋겠는데..’.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서 어제 밤에 먹은 야식의 흔적을 정리하고 나니 또 졸립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잠깐 눈 좀 더 붙여야지 싶어 뒤를 도는데 갑자기 그녀가 나타났다. “워! 히힛 엄마 깜짝 놀랐지? 우하하하하” “더 자도 되는데 일찍 일어났네? 아직 일어날 아침이 아니에요. 엄마랑 더 자러 갑시다.” “엄마! 해님이 하늘에 있는데 당연히 아침이지. 근데 우리 오늘 뭐 해? 어디 갈 거야?”
주말 부부, 독박육아의 시작
다니던 어린이집이 개학을 하자마자 폐업을 하게 되어 둘이서 지냈던 작년 7개월 동안의 아침은 항상 아이의 질문으로 시작했다. “엄마, 우리 오늘 어디 가?”, “심심해.”, “어디 갈 거야?”, “친구들이 오늘 놀 수 있대?” 처음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딸아이는 집에서 엄마와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에 아이는 매우 행복해했다. 나는 개인 시간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때가 아니면 언제 같이 단 둘이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을까 싶어 다음 해까지 아무 데도 안 보내기로 결심했었 다. 그때가 마침 주말 부부가 된 지 반년 정도 되었을 때라 남편 저녁을 챙기지 않아도 되 고 별로 어려울 것이 없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나를 걱정하며 아이랑 둘이 하루 종일 뭐 할 거냐, 그러다가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적응을 못 할 수도 있 다, 학습이 뒤쳐질 수 있다는 등 염려를 많이 받기도 했다.
놀아주지 않는 엄마
첫 한 달은 집에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도 보여주고, 놀이터도 가고, 한 주 내내 친정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게 보였다. 이 시기(5~7 세) 아이들은 역할놀이를 많이 하는데 이 놀이를 할 때 재미가 없다 보니 친구들이 그립다고 제일 많이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나 또한 역할 놀이를 하면서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러 자꾸 대충 놀아주게 되었고, 아이가 무슨 대화를 원하는지 몰라 결국에는 싸우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내가 아이와 노는 게 전혀 즐겁지 않아서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마다 핸드폰을 주거나 TV를 켜주게 되었 다. 좋은 엄마는 아니더라도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이 상태로 반년을 더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집 밖으로 나가자
기관을 다니지 않는 대신에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은 학원에 보내고, 남은 시간에는 되도록 많은 추억을 만들기로 했다. 학원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3가지 분야를 주4일에 분산시켜서 어떻게든 둘이 같이 밖에 나가게 일정을 잡았다. 나갈 이유가 없으니 자꾸만 집에 있게 되는 것 같아서 내린 결론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학원비가 아까워서라도 나가게 되더라. 주말을 뺀 주중의 하루는 멀리 여행을 갈 것을 생각해서 아이의 일정을 비워두었다. 그리고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운전을 할 수 없는 뚜벅이 엄마니까. 일단 가까운 흑석 시장을 같이 가보기로 했다. 일단 아이가 장보기에 흥미를 가지도록 전날 아이 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게 하고 재료를 사러가자고 설득했다. 학원이 끝나고 카레 재료로 당근 한 개, 감자 두 개, 돼지고기 이천원 어치를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시장에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다음은 문방구, 동네 놀이터 탐방, 서점, 현충원 등으 로 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집에서 나오니 아이를 돌보느라 나도 핸드폰이나 TV를 안 보게 되었고, 아이도 장난감 이 없으니 가는 곳 주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져 나갔다.
엄마는 친구가 아니다
집에서 아이와 단둘이 주5일을 보내면서 나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딸아이에 게 친구가 되어줘야겠다.’라는 결심이었다. 임신을 했을 때부터 친구 같은 엄마가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시기를 겪으면서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내가 6세 아이의 친구가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나는 친구 같은 엄마의 의미를 잘못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친구는 또래 아이들로 충분하고, 나는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응원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엄마만 되어도 아이와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내가 무엇인가를 사주거나 근사한 곳을 데려가지 않아도 엄마와 같이 있는, 엄마가 그 아이를 바라 봐 주는 시간을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집에서 아이에게 TV를 보라고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하고, 핸드폰을 주고 집안일도 하 고, 아이에게 제발 혼자서 놀라고 사정하기도 하는 서툰 엄마다. 그렇지만 하루의 한 시간은 아이 를 바라봐 주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어내기로 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아이는 이제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먼 거리도 버 스를 타게 되었고, 엄마가 잘 때 이불도 덮어주는 친구 같은 딸이 되었다. 서툰 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낸 탓에 또래보다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그래도 항상 지금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 춰주길 바라는 것도 나의 욕심이리라. “내 아기, 엄마가 진짜 많이 사랑해.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글·사진 소녀주부•김은제 (흑석동)
이 세상에 7세 딸래미 말고는
무서운 게 없는 여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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