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가요(국내)_팽목항의 노란 물결
의미 있는 휴가를 위해 떠난 팽목항 여행. 눈 시리게 파란 바다와 하늘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가족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팽목항은 우리 가족에게 아름답지만 마음 아린 추억을 선사해 주었다.
글·사진 재미니맘•김윤희 (상도4동)
약수터에 사는 베스트 드라이버
남편과 애인같은 아들, 여우같은 딸
노는게 제일좋은 여자
팽목항으로 가는 길
이번 휴가는 의미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 목적지를 팽목항으로 정 했다. 2018년 7월 4일 베스트 드라이버 남편을 의지하며 물빛과 하 늘빛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달렸다. 누군가의 고향이며 누군가의 여 행지였을 이름 없는 항구 팽목항은 그날 이후 아픈 기억으로 남았 다. 2014. 4. 16. 오전 8시49분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급 변침을 하여 침몰한 세월호에는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 476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 는 안내 방송을 듣고 승객들 은 수장 되었고 선원들은 탈출한 무서운 사건이었다. 그렇게 큰 사 고의 현장이란 것을 모르는 아이들은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 보며 풍경에 감탄했다. 너무 아름다운 진도에 모습에 감탄과 함께 시린 눈물이 고였다. 우린 아이들과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 세월호에 관한 대화를 나누 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아니?”
큰아이가 묻는다.
“팽목항은 세월호가 침몰 한 곳 아니에요?”
“맞아”
작은딸 아이가 묻는다.
“팽목항, 세월호 그게 뭐예요?”
“조그만 항구인데 배가 오가는 곳이지. 세월호는 배 이름이야. 몇 년 전 언니, 오빠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배를 타고 가다가 침몰해 서 많은 언니, 오빠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갔어. 그 곳에 서는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기도하러 가는 거야.’
“무슨 배라고, 아빠?”
“세월호 언니 오빠들 엄청 무서웠겠다.”
“엄마, 아빠도 못 만나고 어떡해...”
“엄마도 알고 있었어?”
“그럼. 그 때 모든 엄마들은 한 마음으로 기도했었어. 한 명이라도 살아 있기를...”
딸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가슴이 먹먹했다. 적막을 깨며 큰아들이 이어 말한다.
“세월호 라고 엄청 큰 배인데 많은 사람들이 타고 가다가 배가 뭔가에 쾅! 부딪쳐서 기우뚱하고 옆으로 쓰러지더니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대. 지금 우리가 가는 항구는 그 배가 가라앉은 바다가 보이는 곳인데 거기서 우리가 기도해 주면 좋대.”
“넌 뭐라고 기도할래.”
“난 언니, 오빠들한테 물속이 추웠을 텐데 따뜻하게 지내라고 할 래”
“그래, 좋은 생각이네”
먹먹한 심장, 미안한 마음
팽목항에 도착했다. 노랑 리본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세월호 희생자를 그리는 내용을 담은 타일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가 배가 가라앉은 위치라고 알려주고 함 께 말없이 바다를 바라 봤다. 맑고 푸른 바다 한 가운데 참사 위치를 보니 더 마음이 무거웠다. 빨간 등대에 남겨진 5명에 ‘기다림의 등대’가 있었다. 등대 앞에는 희생자들이 좋아하는 간식들도 놓여 있고 다양한 물건들이 보였다. 난 아무것도 사가지고 오지 못해 또 한 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등대를 마주보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 들의 부모들은 어떤 마음일 까? 그저 한 번 와 보고 현장 을 바라 본 내 마음도 이렇게 아픈데 다 키운 자식을 마음 에 묻는다는 것이 그 것이 얼마나 삶의 고통일까. 짧은 시간이지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 후 무거운 발걸 음을 돌리려는 순간 매달려있 던 노란리본 하나가 떨어져 있 었다. 바람에 실려서라도 엄마 곁에 가고 싶었을까. 왈칵 쏟아 지는 눈물을 훔치며 떨어진 노 란리본을 주워 탄탄하게 매달아 주었다.
‘어른들이 미안해’
한 뼘 더 성장한 아이들과 집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지 물어 보았다. “오늘 다녀온 팽목항에서 뭘 생각했니?” 5학년인 큰아들은 많은 뉴스를 접해서인지 “나쁜 사람들 때문에 잘못도 안한 사람들이 희생된 건 정말 나쁜 행동이야.” 하며 살짝 흥분한다. “선장은 먼저 대피하고 왜 사람들을 안 구했을까?” “자기네만 살려고 탈출하고 배에 탄 사람들은 버리고 가고 남에 목 숨은 소중하지 않은 거야?” “내가 만약에 그 상황이었다면 절대 도망가지 않고 사람들을 먼저 대피시키고, 방법도 알려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도와 줄 거야”
“오빠, 하늘나라에 가면 아프지도 춥지도 않고 좋을까?”
“언니, 오빠들은 엄마, 아빠가 안 보고 싶을까?”
“야! 죽었는데 뭐. 엄마, 아빠 하늘나라 오실 때 까지 기다리는 수밖 에...”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어른인, 부모인 내가 이 아이들을 언제까 지 지켜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여러 일들이 잠시 상기 되었다. 아직 철없는 아이도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의 안전 보다는 함께 살 길을 돕겠다 는 마음인데 우리는 어떤가. 남이 잘 되면 배 아파 하고 질투하고 그 것을 마치 우리 민족의 전통 성향인 듯 내 탓이 아니라고 미루는 마 음이 곳곳에 퍼져있는 것이다. 가만히 운전하고 있던 남편이 아이들과의 대화에 살며시 끼어든다.
“얘들아, 사람은 한 번은 죽어. 그런데 억울한 죽음은 안돼”
“아빠는 우리나라든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에는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너희들이 어느 곳에 가더라도 어린이는 어른이 보호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엄마도 모든 아이들을 보면 내 아이 같이 생각해”
“너희들과 이런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어느새 이리 컸니?”
짧은 한 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빛이 너무 파랗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분들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18년 현재 돌아오지 않은 다섯분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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