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는 9단, 기자는 초보인 동작맘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

동•친•소_동작맘, 캐다나에서 살아남기

<동•친•소 - 동작구를 떠난 친구를 소개합니다>

동작맘, 캐나다에서 살아남기



늦둥이 아들은 항상 모든 것이 늦었다. 돌이 한참 지나도 걷지 않았고, 36개월이 다 되어 가는 데 말도 잘 못하는 아이였다. <동작맘 모여라> 카페의 동작맘들과 육아를 하면서 포트락 파티나 소모임을 주최해 동진이의 친구를 만들어 주고 친구들끼리 배우며 잘 자라주길 바랬다.

글 | 사진 미소천사•신정은(할리팩스, 캐나다)
동작맘 모여라 드림과 모임의 여왕
정리 지누마미•김용화


2014년 9월 3일 남편과 의논 끝에 동생이 있는 캐나다에 가기로 결심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내가 내 인생에서 처음 도전 하는 나의 인생역경이었다. 캐나다에 도착하여 동생이 살고있는 곳인 뉴브런스윅(NewBrunswick)주에 있는 미러미시로 갔다. 그때 동진이의 나이가 여섯 살 이 었다. 미러미시(Miramichi)에서 유치원 (Kindergarten)을 보냈다. 미러미시는 지방의 아주 작은 마을이다. 한국도 지방 정서가 그렇지만 캐나다 지방 사람들도 조용 하고, 인심이 좋아 이방인인 우리를 친절 하게 대해 주었다. 마트를 가거나 길을 지 갈 때 동진이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꼬마는 나한테 와서 “Where are you from?”하고 묻기도 했다. 미러미시에서 내 동생 그리고 나와 동진이, 우리 셋만이 동양인이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호기심 어리게 바라본 것이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나를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도 하고 서로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었다. 한국에서도 내 성격은 ‘어딜 가도 잘 살 사람’이라는 평 가를 받았었다. 미러미시에서도 나는 이웃 인 그들에게 항상 웃음으로 대하고 피하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이 잘 전달되어 이웃들은 나의 언어로 인한 소통 부족이나 어려움을 이해해 주었다. 정든 미러미시에서 할리팩스로 이사 할 때 이웃들 중 몇몇이 회사를 하루 쉬고 이사를 도와 줄 정도로 너무나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나홀로 할리팩스에 가다

처음 2년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는 캐나다에서 하루하루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좋았다. 때론 코뿔소와 곰도 보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 동생 내외와 함께 여름휴가를 할리팩스로 가면서 난 도시 여자라는 각성을 하게 되었고 도심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쁘고 답답하게 살아오던 한국 생활에서 캐나다 자연환경의 편안함에 취해 진정한 캐나다를 못 본 것이 었다.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도시 할리팩스(Halifax)에 매료 되었다. 우리나라로 생 각하면 부산 같은 곳이다. 산과 바다, 호수, 도시의 세련됨 모든 것이 어우러진 곳 이었다.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가면 아름다운 바닷가를 볼 수 있고 다운타운은 차로 15 분이면 갈 수 있었다. 자연과 도시의 어우러짐은 나를 자극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할리팩스로 꼭 이사 가겠다고 ‘기다려라 할리팩스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남편은 영어를 전혀 못하는 내가 대도 시에서 아이와 둘이 지낸다는 것을 불안해 했다. 그냥 동생 옆에서 보호를 받고 살라고 했지만 나란 여자는 미러미시에서도 동생의 큰 도움 없이 만국 공통 언어인 바디 랭귀지와 센스로 현지 사람들과 소통하면 서 살았다.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남편 을 설득하고 하나님께 1년간 기도하며 응답을 받았다.

늦게 시작한 영어공부

2016년 6월 30일에 할리팩스로 이사하게 되었다. 현재 할리팩스에서 3년째 살고 있다. 할리팩스로 이사를 오게 된 나는 그해 10월부터 1년 3개월 동안 랭귀지 스쿨을 다녔다. 기초실력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랭귀지 스쿨에서 테스트를 보면 레벨3에 서 시작했으나 나는 레벨1에서 시작했다. 랭귀지스쿨 레벨1 클래스엔 나 혼자였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끝에 레벨 6까지 갔다. 다양한 나라 친구들과 공부 하는 것이 재미있고 생소했지만 하루하루 영어를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신선한 생활이었다. 현재는 홈스테이를 업으로 하 며 아들을 케어하고 있다.


캐나다의 교육환경

할리팩스는 교육 도시이다. 의대, 예술대, 미대, 경영대등 총 6개의 대학교와 1개의 전문대가 있는 곳이다. 특히 공교육의 체계적 커리큘럼은 캐나다 교육의 자랑이다. 여기는 우리나라처럼 교육 커리큘럼이 수시 로 바뀌지 않는다. 의대로 유명한 달하우지 대학교(Dalhousie University)는 캐나다 전체 대학에서 7위에 해당하는 대학교다. 그렇게 느리던 동진이도 이곳에서 잘 적응하면서 한 해 한 해 성장하고 있다. 체계적인 공교육을 통해 원어민과 똑같은 수준으로 영어를 배우고 익힌다. 동진이가 재밌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환경이라 스트레스 받아 하지 않고 즐긴다. 또한 한국어도 잊어버리지 않게 가르치고 있다. 작년까지 한글학교도 다녔다. 동진이는 한국인이기에 모국어를 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아이들의 천국이다. 미성년자 보호법이 우리나라 보다 훨씬 엄격하고 체계적이다. 아이들의 안전과 보호는 1순위다. 스쿨버스를 탈 때도 양쪽 차선에 있는 차는 무조건 멈춰서야 한다. 캐나다는 사고로 아이들이 죽는 일은 거의 없다. 수영장, 스케이트장 등 아이들이 이용하는 시설에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공공 놀이시설 이용 나이 제한 만10세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 하루가 모자라도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법을 철저히 지킨다. 이 나라는 이익 창출보다 아이의 안전과 생명을 중시 여긴다.  

교육 또한 이곳은 학원이 없고 초등학교 때는 숙제가 없다. 아이들을 무조건 운동 시키고 공원 놀이터나 야외에서 놀게 한다. 5년째 살고 있는 나는 캐나다 친구한테 물어 보았다. “왜 초등학교 때는 숙제도 없고 아이들을 계속 놀게 하니?”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 말이 학년이 올라갈 때를 위 해서란다.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공부를 계속 지루해 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이 공부 할때도 지치지 않고 학교생활을 잘한다. 어릴 때부터 자연과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서 그런지 마인드 자체가 긍정적이고 삶이 여유롭다. 또한 자존감도 높다. 외모나 자신이 가진 부 와 권력으로 남을 무시하거나 자랑하지도 않는다. 하나의 예로 동진이 학교 교장선생님과 학교 청소부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라 청소부의 옷이 더럽고 지저분해도 서로 보면 얼싸 안고 안부를 묻는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친구의 직업은 그저 직업일 뿐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천직이라고 여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캐나다도 <동작맘 모여라> 1대 매니저 신비로아가 살고 있는 미국처럼 인터넷 기반 환경도 느리고 와이파이존도 드물고 택배 도 한국처럼 빠르거나 최첨단은 아니다. 아직도 열쇠 꾸러미를 한주먹씩 들고 다니고 마트에서 계산이나 은행 업무도 우리나라 2000년대 초반 수준이다. 하지만 이 나라는 최첨단을 빨리 접하지 않는다. 자연 친화적인 환경 정책 때문인 것 같다. 캐나다는 물과 나무만 팔아도 국가경쟁력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이로운 점을 먼저 생 각하고 소중하게 다루어 미래 유산으로 남기려 애쓰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여름방학과 주말을 싫어한다. 학교를 안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와 학원 공부에 지쳐있는 한국 아이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의 학교는 재미있는 배 움터이기에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즐거움을 안다. 여름이면 호수에서 수영하고 겨울이면 호 수에서 하키를 하는 동진이를 보면 그저 기특하고 대견하다. 동진이 유년기때 <동작맘 모여라> 활동을 하며 지친 육아 속에 활력을 찾고 소통했던 나의 기억이 새롭다. 친구들과 언니들, 동생들을 만나면서 희노애락을 나누던 카페이다. 내가 초창기 회원 일 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번창할지 몰랐다. <라디오 동작맘> 동친소 코너에 랜선으 로 출연도 하고 날로 발전하는 카페의 이야기를 잡지로도 만날 수 있다니 무척 뿌듯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만날 동작맘들이 더욱 반가울 것 같다. 그땐 나도 꼭 지누마미 언니랑 같이 라디오 동작맘 <엄마는 방송중> 진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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