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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골가게_3] 부산마트


노량진2동의 랜드마크 부산마트


글·사진 | 김용화•지누마미 (노량진동)

“엄마! 아이스크림 하나 사 주세요. 네?”
애처로운 눈길로 진우가 내 손을 잡고 끙끙거린다.
할 수 없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워메, 장군 왔는가.”
육순이 넘으신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뒤져 콘을 들고 와선 마치 장군의 칼처럼
계산대 위에 턱 올린다.
“할아버지, 난 부산마트 아이스크림이 제일 맛있어요.”
“우리 장군 말도 예쁘게 하지. 허허허”

육순이 넘은 부산마트 사장님은 30여년전 이곳에 정착하셨다. 부산마트의 옛 상호는 <부산상회>였다. 상도동에서 화장지 중간도매상을 하며 <부산상회>에 화장지를 납품하다가 이
건물을 인수하셨다. <부산상회> 위치는 골목안 삼거리 코너였고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었던 30년 전,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이 이정표로 <부산상회>를 찾고 그 곳의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어 집을 찾아갔다. 전북 김제 출신 사장님은 건물을 인수하고 간판을 바꾸려 할 때 동네 사람들이 바꾸지 말고 쓰라고해서 이제껏 쓰고 있다.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은 얕은 수로 장사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한참 마트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8년 전 <부산마트>로 간판을 바꾸고 내부 인테리어도 편의점처럼 재정비 했다.

마트 맞은편으로 우리 가족이 이사 온지 벌써 12년이 되었다. 어느 여름날 아이들의 목 소리가 동 네를 울 렸다. 목 소리의 주 인공은 <부산마트>의 손주들이었다. 마트 건물에 4대가 함께 살았는데 노할머니와 사장님 내외, 큰아들 내외와 아이 넷이 살았다. 그 집 아이들이 밖에 나와 놀자 옆집에 사는 유진이도 나오고 진우도 자연스레 밖으로 나가 놀았다. 마트집 손자 휘성이는 진우보다 한살이 많았지만 진우와 잘 놀았다. 줄넘기도 하고 팽이도 돌리고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여름밤의 풍경이 있었다. 큰길가에 태권도 셔틀이 섰고 진우는 골목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부산마트>를 향해 돌진한다. 사계절 내내 아이스크림과 과자, 젤리 등 꼭 무언가를 사서 집으로 올라갔다. 살집이 많은 진우를 보며 우리 부부는 우스갯소리처럼 “네 몸무게의 반은 <부산마트> 덕분”이라고 말한다.

요즘 이 동네는 50m 간격으로 편의점이 있다. 최소한의 상도덕도 없이 다닥다닥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부산마트>도 존립에 위기가 왔다. 그러나 사장님은 30년 동안 이곳을 지키며 살았기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하신다. 지금 나이에 새로운 것을 배워 써먹을 수도 없고 흔하다는 경비도 할 수 없으니, 임대료 안 나가는 내 가게고 동네 사랑방이라 생각하며 운영 하신다. 몇년전만 해도 가게문만 열면 아는 이가 많이 지나다니는 정겨운 동네였는데
지금은 하루 한두 명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주택이 원룸으로 리모델링되면서 원주민들은 떠나고 젊은 세대만 철따라 들락날락하기 때문이다.

“사는게 힘드니 잘 나가는 건 술 뿐이야. 그냥 내 인건비 정도 벌고살아.”
“이 동네는 나이먹은 사람들 갈 만한데도 없어. 옛날엔 어머니하시던 수선집이 사랑방이었지. 우리집 애들이 놀고 있어서 할매들도 손주 데리고 나와 놀다 갔지.” 사장님의 어머니는 마트 맞은 편 가게에서 90이 넘도록 수선집을 하셨다. 할머니는 몇 년 전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지금은 <부산마트>가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오늘도 진우 는 부산마트를 들여다보며 “안녕하세요”하고 거수경례로 사장님과 인사를 한다. “장군 왔는가!” 정겨운 웃음으로 맞이해 주시니 무엇을 사지 않더라도 꼭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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