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반성문] 엄마, 왜 울어?
엄마, 왜 울어?
글·사진 | 차기선•차차86 (노량진2동)
첫째 아이 원우가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어한다. 우리 네식구 살기에도 작은집이지만 원우가 좋아하니 원우의 친구를 초대한다. 원우의 친구, 친구 동생, 20개월 둘째 아이 리라의 친구도 초대하니 집이 더 작게 느껴진다. 거실은 장난감으로 난장판이고 침대에는 오전에 다림질 했던 옷들을 미쳐 정리하지 못하고 놓여있다. 다들 돌아가고 원우에게 이제 정리를 하자고 해도 놀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유난히 엄마말을 무시한다. 남편과 문자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원우에게는 정리하자고 다시 말한다. 남편은 문자로 나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두 남자에게 무시 당하고 있으니 화가 나기 시작한다. 원우에게 난 화가 남편을 향하고 남편에게 난 화가 원우를 향한다. 원우는 여전히 정리를 하지 않고 남편은 계속 자신의 의견만을 강요한다. 남편이 장문의 문자를 여러통이나 보내지만 다 같은 결론이다. ‘내 말이 맞고 네 말은 변명이다.’ 내 손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난다. 리라는 눈치 없이 똥을 닦아 달라고한다. 화가 나지만 리라의 엉덩이가 걱정된다. 나는 화장실 손잡이를 잡고 원우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지만 대답이 없다. 참아왔던 분노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왜 대답을 안해!” 라며 소리를 지르니 그제야 원우가 나를 본다. 화는 표출 할 수록 참기 힘들다. 스스로 ‘하지말자. 하지말자.’ 설득하지만 이미 내 발은 레고가 담긴 통을 공 마냥 차버렸다. 통은 날아가고 레고들이 흩뿌려지며 원우의 얼굴을 때린다. 아이는 자기가 만든 레고가 부셔져서 화가 나고 얼굴에 레고를 맞아서 억울한 마음에 울기 시작한다. 눈치 없던 리라도 같이 운다. “왜 너까지 엄마를 무시해! 아빠가 엄마 무시하니까 너도 엄마가 우스워!?” 던진 말이 진심은 아니지만 내가 남편에게 받은 상처만큼 아이를 공격한다. “왜 무시해! 왜!”
반복해서 말하지만 아이는 소리 지르며 울기만 한다. 원우가 대답을 하지 않으니 나의 입을 멈출 수가 없다. 제발 누구라도 나를 말려줬으면 싶다. 화를 내는 이 순간에도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 상처 받는 아이가 걱정된다. 아이에게 화풀이 하는 내가 싫다. 거실에서 안방으로 걸어가며 발에 닿는 모든 장난감을 발로 차며 길을 만든다. ‘내가 이만큼 화가 났다.’를 알리려고 굳이 또 찬다.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울다가 그게 소용 없다는 것을 금세 깨닫고 ‘아빠’를 찾으며 운다. 문득 ‘내가 화가 난 건 남편 때문인데 왜 이 전쟁터에 남편은 없지?’라는 생각에 휴대폰으로 남편을 소환한다. 스피커폰으로 돌려 휴대폰을 아이 앞에 던져 놓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빠한테 직접 말해!” 원우가 아닌 남편이 들으라고 한 말이다. 침대에 가서 누우니 남편과 원우의 대화가 들린다. “아빠가 금방 갈게” 라는 대화를 끝으로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서 울고 있다.
남편은 정말 금방 왔다. 남편에게 화가 나서 울기 시작했지만 이제 나는 원우에게 미안해서 운다. 분한 마음도 든다. 상처는 남편이 줬는데 가장 죄책감을 느끼는건 결국 나다. 항상 이성적인 남편과 싸워봤자 나만 손해다. 거실에서는 남편이 원우를 안아주고 있는 듯 하다. 나
는 침대에 누워 벽을 보고 눈물만 흘리다 소리내어 운다. 남편이나 원우가 와서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면 금방 풀릴텐데, 그 둘은 원우의 감정에 대해 대화하느라 나는 뒷전이다. 눈치 없는 리라만 침대 위에 올라와 특유의 여린 목소리로 의도는 담지 않고 사랑의 의미만을 담은 채 “엄마, 엄마”’ 하고 나를 부른다. 리라의 허스키하지만 여린 목소리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제는 이 상황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반이고 화를 더 내고 싶은 마음도 반이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아이들 저녁이 걱정이 된다. 그런데 그 둘의 대화를 듣자니 다시 화가 난다. 아빠는 아들에게 잘못한 것이 없냐고 묻고 아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한다. 아빠는 그런데 엄마
가 왜 화를 내냐고 묻고 아들은 모른다고 한다.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간다. “너가 정말 잘못한 게 없어? 엄마가 좋게 정리하라고 몇 번을 얘기 했는데 너가 정리했어? 어질러진 거 다 그냥 버려! 쓰레기처럼 놔뒀으니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 소리지르며 쓰레기봉투를 들고와 어질러진 것들을 닥치는대로 봉투에 담는다. 침대에 다림질해서 올려뒀던 옷들은 이미 구겨졌다. 그 옷들도 담으며 “이것도 쓰레기 같으니 버려!” 소리지른다. 원우는 다시 울기 시작하
고 나는 봉투를 마당으로 집어 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나는 또 그런 스스로가 한심해 침대에 드러누워 운다. 한참을 울고나니 원우에게 화를 낸 나의 모습이 후회된다. 원우가 주섬주섬 정리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거실에 나와 묵묵히 정리 하는 것을 도와준다. 정리가 끝나고 원우를 부른다. “원우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소리 지르고 레고 발로차서 미안해. 아팠지? 그 누구도 원우한테 그렇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건데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 괜찮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를 용서해주는 원우의 모습에 눈물이 난다.
“엄마. 왜 울어?”
원우는 모른다. 왜 사과를 하며 우는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도 없고 눈물이 날 만큼 잘못을 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원우한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나네.” “엄마 나는 정말 괜찮아. 괜찮은데. 엄마 괜찮으니까 울지마.” 원우는 나에게 다가와 나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준다. 남편은 꾸역꾸역 옆으로 밀고 들어와 앉는다. “아, 이 틈에 껴서 같이 용서 받읍시다. 내가 말이 심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원우는 용서하는 방법을 나에게 배웠을 것이다. 가르쳐준 것은 아니지만 원우는 자신이 용서를 받으며 용서를 하는 방법도 배웠을 것이다. 용서를 알려준 것은 엄마와 아빠인데 그 방법과 모습은 다르다. 아무런 조건과 약속 없이 용서를 하는 원우에게 나는 오늘도 용서하는 방법을 배운다. 아이에게 느끼는 죄책감은 용서를 받아도 그 밤까지 이어진다. 작은 용서를 받으면 그 밤까지 이어지고 그보다 큰 용서를 받으면 다음날까지도 이어지는데 어떤 날은 그 용서의 크기가 너무나 커 몇 달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오늘 내가 받은 용서는 그만큼 커 얼마나 갈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도 죄책감에 눈물 나며 마음이 너무 아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에 빠져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용서의 대가를 치르는 덕에 ‘용서받을 일’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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