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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세상사] 이쁘게 잘 나왔네





글·사진 | 토리• 최윤재


“우리 가족사진이라도 찍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드문드문 서로의 안부만 확인하던 언니에게 뜬금없이 문자가 왔다. “왜?” 건조한 나의 한 마디가 전송되자마자 벨 소리가 조급하게 울렸다. “아빠 팔순이잖아, 봄에 따뜻할 때 마을 친구분들 모시고 식사 대접이라도 한다고 했는데.. 올해는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우리 가족끼리 밥 먹고, 사진이라도 찍자고.” 생각해 보니 올해 중1이 되는 큰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찍은 사진 말고는 가족사진이 없었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인 듯한데 또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나 보다. 벌써 13년전 일이었구나.

“응, 알았어. 서울로 올래? 내가 알아볼게.” 짧게 사사로운 것들을 조율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혼한 후로 나의 중심은 남편과 아들, 딸이어서 친정을 잘 돌아보지 않았었다. 친정의 사소한 일, 큰일 모두 큰 딸인 언니에게 미뤄두었다.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좀 챙겨야겠다. 서둘러 날짜에 맞는 식당과 사진관을 찾았다. 몸이 편치 않으신 아빠와 낯선 곳에서 몸과 마음이 예민해지는 엄마, 5살, 3살 자매를 키우는 남동생 내외와 중등, 초등 우리 가족, 그리고 언니까지... 2시간 남짓 걸리는 곳에서 이동해 모이는 가족들을 위해 식사 장소와 사진관의 이동거리도 짧아야 했고, 서둘러 재촉하듯 찍지 않고 여유롭게 쉬엄쉬엄 찍을 수 있는 곳이길 바랐다. 5살, 3살 자매가 지루하지 않아야 했고, 11명 가족 모두 자연스럽게 행복한 모습이 드러났으면 했다. 어렵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곳이 찾아지지 않았다. 사진관 포트폴리오가 맘에 들면 촬영 시간이 맞지 않았고, 위치가 맘에 들면 가격이 안 맞았다. 그렇게 찾은 사진관. 나도 한 번 가본 적이 없는 곳이기에 걱정되는 마음으로 작가님과 가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컨셉틀를 정했다.


‘청바지에 흰 티를 입을까? 아냐.. 아빠, 엄마는 청바지 안 입으실 텐데...그럼 정장을 입을까? 아고, 우리 네 식구만 봐도 정장을 다 다시 사야 하는데? 아니다 이건. 그래, 우리 가족답게 자연스럽게 찍자, 색깔만 맞춰봐 흰색! 흰 바지든, 티든 흰색하고 파란색 쪽으로 맞춰보자!’ 호기롭게 정하고, 드디어 그날! 아빠는 한복을 입고 오셨다! 하하하! 아빠답다! 당황스러워야 하는 게 맞는데, 그냥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 그렇지 그래야 아빠지. 평생 말씀이 적으셨던 아빠. 요즘의 아빠들처럼 사랑한다는 마음도, 사랑한다는 눈빛도 편히 내보이시지 않았던 아빠였다. 그런데 그런 아빠가 딸들이 오란다고 서울까지 오셨으니 그걸로 됐다. 배부르게 눈앞에 있는 그릇을 다 비운 둘째 딸인 나에게 ‘밥 더 먹어라.’ 툭 던지시는 한 마디가 사랑한다는 말인 걸 이제야 알아들으니 나도 참 헛똑똑이 늦된 딸이다. 다행히 작가님은 편하게 하자며 어려워하지 않으셨고, 그냥 그 대로 가족의 모습에 카메라를 맞추셨다.



전체 가족사진을 찍을 때 지쳐 보여 꼬맹이들 잠시 쉬는 동안 엄마, 아빠의 부부 사진과 장수 사진까지 찍었다. 원래 계획은 11명 가족사진 한 컷이었는데, 분위기에 취해 온 가족의 사진을 하나하나 다 찍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내 차 트렁크에 액자를 싣고, 뿌듯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텃밭에 나갔다 오신 아빠가 사진을 쭉~ 보며, 잘 나왔네. 그리고는 툴툴 손을 털며 돌아서신다. 사진을 핑계로 든든한 엄마 밥을 먹고 수다를 떨다 돌아왔다. “띠리링...... 어 엄마? 무슨 일?” “아빠가 엄마 아빠 사진 잘 나왔다고, 삼 남매 집집마다 하나씩 갖다 놓으래. 액자 두 개 더해라. 그리고 엄마 혼자 찍은 사진 보더니, ‘예쁘게 잘 나왔네.’ 하시네. 맘에 드시나 봐.” 그걸로 됐다. 늦게 삼 남매를 낳으시고 돌보시느라 칠순도 어영부영 지나고, 마음먹고 팔순은 잘 해 드리자 약속했다. 하지만 이럴 줄 알았나, 참 무심한 코로나19. 그래도 사진 하나 남겼다다행이다우리 아빠 엄마 멋지게 나이든 모습 담아 놓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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