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SAY] 엄마를 찾지 마세요
‘나에게 100만 원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보낼까’라고 꿈꿔 본 적이 있다. <엄마를 찾지 마>라는 EBS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행복한 상상이었다. 그러나 신데렐라가 마법에 풀리듯 내 옆의 아이와 남편을 보면 현실로 돌아온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엄마, 아내, 며느리가 아닌 나 자신의 모습으로 지내는 그녀들의 일탈 이야기.
취재·인터뷰 | 소녀주부(김은제)
책 속의 무한 상상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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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하루 | 마르탱 파주 (문이당) |
난 하루를 꽉 차게 사는 걸 좋아했다. 무슨 불안증인지 집에 우두커니 있거나 퇴근 후 약속이 없는 날은 더 피곤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혼이 빠져나간 듯한 멍한 시간들이 하루 중 어느 때나 툭툭 튀어 나왔다. 천사 같은 아이는 항상 방긋방긋 웃어 주는데 엄마로서 죄책감 육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찾은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완벽한 하루 | 마르탱 파주(문이당)>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 속 주인공은 몸속에 거대한 상어가 놀고, 그가 우울할 때 마리아치 4중창단이 나타나 노래를 불러주곤 한다. 이 외에도 정말 황당하고 개연성 없는 무한 상상은 피곤에 찌든 나에게 피식하고 헛웃음을 짓게 했다. 딱 죽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생긴 독서 일탈이 평소 읽지 않는 장르의 책을 찾아보는 것이다. 책 속에서 찾은 대리만족은 상상이상이다. 로맨스, 욕망, 좌절, 권력의 맛, 평소에 알 수 없는 초절정 오르가즘마저 글로 가능하더라. 살아온 경험이 감정이입 되어서 일 거다. 코로나 시대로 집 밖은 안전을 보장 못 하니 상호대차로 책을 빌려 에어컨 틀고, 커피 한 잔과 책으로 상상 일탈을 경험해 보시길 권한다.
뮤지컬이 끝나고 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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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빵만 먹어도 행복한 시간 |
나는 결혼 전부터 연극이나 뮤지컬을 좋아했다. 대학시절 춘천에서 오전 강의가 끝나면 서울로 공연을 보러 오곤 했으니까. 영화나 TV로 느낄 수 없는 생생한 현장감이 뮤지컬의 매력이었다. 셋째를 낳고 나서 드디어 뮤지컬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보고 싶은 뮤지컬이 생기면 남편에게 표를 끊어 달라고 했다. 예매가 완료되면 그때부터는 그날만 기다려진다. 이날은 특별히 아이셋의 저녁 육아는 오로지 남편 몫이다. 밥먹이기, 씻기기, 뒷정리 등에서 완벽하게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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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공연장 전경 |
나는 아이들 저녁만 준비해 놓고 저녁 6시에 집을 나선다. 공연장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나 케이크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8시 공연 시작 전까지 서점에 가서 책을 보기도 한다. 혼자 보내는 이 시간만큼은 배도 안고프고 마냥 좋다. 뮤지컬 <레베카>는 작년에만 두 번 봤다. 한 번은 혼자, 한 번은 친구와. 레베카 역의 옥주현씨는 비싼 돈을 내고 온 관객을 위해 공연 시작 4시간 전부터 굶고 인터미션 때에는 복식호흡을 위해 복근 운동 100개를 하는 등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그녀의 노력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레베카>를 보시길. 블루스퀘어 2층 6열에서.
인적이 드문 밤 11시, 공연이 끝나면 오롯이 그 감동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친구와 같이 볼 수도 있겠지만 시간도 맞춰야 하고 대화하면서 신경 쓰다 보면 진이 빠진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티켓값은 비싸지만 한 달에 한번 나를 위해 이 정도도 못할까 싶어 작년에는 매달 한 번씩 뮤지컬을 봤다. 하지만 남편의 배려가 없었다면 아이셋 엄마에게 뮤지컬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이번 기회를 빌어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에도 잘 부탁해!
피아노, 코로나가 준 작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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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아노와 동요책 |
아이가 어느 날 무료했는지 배우다 그만둔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갑자기 ‘피아노, 피아노’를 외쳤다. 문득 나도 피아노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폭풍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랜드 피아노의 외관과 다양한 악기 소리를 갖춘 제법 괜찮은 피아노가 우리 집에, 나한테 생겼다. 학원에 가지 못하니 유튜브와 아이가 배우던 바이엘 책을 보며 혼자 독학을 시작했다. 조금씩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친구에게 부탁해서 화상을 통해 레슨도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익숙하고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어서 새로운 도전 같은 것은 솔직히 쉽지 않다. 혼자 양손으로 동요를 완주할 때의 뿌듯함이란.
남편은 피아노 치는 내 모습이 낯설은지 웃으며 바라본다. 그런 남편의 낯선 시선도 좋다. 매일 서로에게 익숙해져 버린 모습에, 의리로 살아가는 우리인데 이렇게 작은 것이지만 다른 내 모습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줌마인 당신이 왜 배워? 아이가 해야지.’ 뭐 이런 표정이지만 ‘배우고 싶었는데 못 해 봐서 한이라고’ 넋두리처럼 말하는 것은 싫다. 결혼해서 누군가의 아내, 엄마, 며느리로 살아가던 내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세계적으로 힘든 시기인 요즘, 이렇게 여유롭게 배운다는 것이 사치스러운 소리 같기도 하고 미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주부로 일상을 살아온 나에게는 작은 선물이다. 도전하지도 않고 그저 시대의 탓 누구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미안하다. 오늘도 띵가띵가 치면서 혼자만의 작은 일탈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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