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세상사] 우리 집 중3은 예순아홉
우리 집 중3은 예순아홉
글·사진 | 박하향
징글징글한 코로나 덕분(?)에 가족들과의 애정만 돈독해지는 요즘이다. 외출도 삼가고, 등교도 하지 않아 종일 붙어 있으니 말이다. 시시각각 스마트폰과만 친구 해대는 아이들을 보면 천불이 일지만, 디지털 세대랍시고 온라인 수업 적응이 빠른 건 또 기특하다. 코로나와 시작한 2학기, 아이들은 이제 정상 등교가 귀찮다는데 책가방 들고 학교 가는 가끔의 하루가 소중하고 반가운 중3도 있다. 주인공은 바로 올해 예순아홉인 친정엄마, 권혁순 여사다.
맞벌이가 흔치 않던 시절부터 공장 일을 다니셨고, 사십 중반엔 친정아버지와 당구장을 개업해 운영하셨다.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당구장 특성상 밤·낮을 잊은 채 운영하시다가 친정아버지의 칠순 즈음 은퇴를 하셨다. 그제야 좀 편히 쉬시나 싶었는데 친정엄마는 학교에 다니겠다 선언하셨다. 삼 남매의 초중고 시절, 학교에 보내야 하는 짧은 학부모 메시지에 틀린 글자가 나올까 전전긍긍하며 우리에게 맡기던 엄마. 글을 읽고 이름을 쓰는 수많은 순간에도 사람들이 지적할까 두려워하다 악몽을 꾸는 일도 다반사였다는 우리 엄마. 엄마가 평생 가져왔던 마음속 응어리는 엄마의 입학 후에 알게 된 속내다. 그렇게 엄마를 옭아매온 자격지심의 사슬은 지난해 3월 끊어지기 시작했다. 학력 인정 중학교인 신동신중학교 1학년이 된 것이다.
엄마의 입학 이후 친정집 벽엔 알파벳에 한자와 화학 원소기호까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의 집처럼 온갖 단어들이 붙기 시작했다. 친정아버지는 가정교사가 되어 엄마에게 수학과 영어를 틈틈이 가르치기 시작했고, 삼 남매는 엄마의 공부에 도움이 될까 싶은 책을 사 보내거나 프린트를 해 드리곤 했다. 그렇게 아빠와 삼 남매 중심으로 돌아가던 친정은 엄마를 중심으로 대화가 돌아가고, 집안 일정도 엄마 스케줄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학력 인정 중학교는 일반 중학교와 달리 2년 내 중학교 3년을 마쳐야 하고 모든 과정이 빠르고 급해 하루하루가 바쁘다. 수많은 영어 단어는 물론, 수학 공식도 어렵다지만, 재작년 오늘의 엄마와 오늘의 엄마는 다르다. 밤잠을 못 이루고, 악몽까지 꾸게 했던 자격지심은 희미해졌고, 좋은 성적은 받지 못해도 성실한 학생으로 급우들과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만들고, 배우고 익힌 것을 가족들에게 제법 뽐내고 있다.
어린아이가 무언가를 배우며 내던지는 갖은 말과 행동에 부모는 기쁨을 표한다. 우린 엄마의 학교생활에 기뻐한다. 철자가 틀릴까 문자 한 통도 보내지 않으려던 엄마는 이제 카톡 가득 긴 문장을 멋지게 써 보낸다. 실생활과는 거리가 있지만,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용어를 중얼거리며 아는 척도 해보는 엄마의 모습이 그저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온 가족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에 목소리 높일 때, 뒤에서 지켜보던 엄마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제 친정에 가면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오로지 엄마만의 이야기를 실컷 들을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대면 수업보다 온라인수업을 받길 바라는 가족들의 마음은 그저 욕심일 뿐이다. 그간 가족을 위해 뒤로 미루기만 했던 엄마의 인생이 이제야 궤도를 찾았으니 말이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가고 있는 엄마의 투지. 지금, 이 순간도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고 또 익히고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친정을 찾은 날이면 우리에게 배운 것을 여지없이 펼쳐 보일 것이다.
그렇게 온 가족의 기쁨이 되어가고 있는 예순아홉 우리 집 중3, 권혁순 여사를 응원한다. 무한한 사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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