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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세상사] 아빠, 내 아빠라서 고마워!

아빠, 내 아빠라서 고마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에게 늘 존댓말을 써왔다. 당연할 수도 있지만, 우리 집에서 아빠는 늘 무섭고 엄격한 사람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고집도 세고, 다혈질에, 아빠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지만, 엄마가 된 후 전보다 아빠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는 아빠 뒷모습을 보면 든든했는데, 아빠 성격이 약해져서일까 아빠의 뒷모습은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지. 늘 항상 고마운 아빠에게 태어나 처음으로 반말 편지를 써보았다.

 

  | 김은제소녀주부

 

아빠, 안녕? 아빠 큰딸이야.

이렇게 편지 쓰는 건 초등학교 어버이날 이후에 처음인 것 같은데, 반말 괜찮지? 무슨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려고.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남들 다 가는 어학연수 가겠다고 했잖아. 그때 아빠가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던 그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그때는 아빠가 경제적 부담이 힘들어서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딸을 키워보니 아이 혼자 내 울타리를 벗어나 타지에 보낸다는 게 아빠 마음에서 얼마나 걱정되고 힘든 결정이었을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아.

 

그리고 내가 뛰어다니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면 아빠가 늘 하던 말 기억나? “그러다가 다친다.”, “다치면 죽을 수도 있어.”, “다치면 약도 안 사 줄 거야.” 그때 나는 어떻게 부모가 자식한테 그렇게 무서운 말을 할 수 있냐고 생각했었거든? 아빠는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아빠는 내가 잘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가 되어 생각해보니 아빠는 무서웠던 거 같아. 내가 다치면 아빠는 너무 속상한데 대신 아파줄 수 없으니까.

 

아빠는 항상 우리들이 뭔가가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한 박스씩, 다시 먹고 싶지 않도록 질리게 먹을 만큼 사줬잖아.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아빠보고 어떻게 이렇게 많이 사올 수 있냐며 타박을 했지. 그런데 엄마는 나한테 “아빠가 어렸을 때 먹고 싶었는데도 못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많이 사오는거야. 그냥 너희가 맛있게 먹은 거로 아빠는 행복해할 걸이라고 말했었어. 지금도 아빠는 내가 뭐가 먹고 싶다고 하면 엄청 많이 사 오잖아. 아빠는 우리가 조금 사 오라고 해도 청개구리처럼 더 많이 사 오고 그러는데 진짜 조금만 사 오면 좋겠어. 그리고 이제는 내가 맛있는 거 많이 사 드릴게.

 

그리고 나 결혼식장에서 계속 웃었잖아. 결혼식 내내 말이야. 사실 너무 눈물이 나는데 아빠랑 눈을 못 마주 치겠어서 그랬어. 엄마와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도 하고 결혼식 준비하면서 이미 많이 울어서 괜찮았거든. 아빠와는 결혼 허락받을 때 말고 진지하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고 사실 결혼하고도 자주 볼 거니까 괜찮을 것 같았어. 근데 아빠 눈이 너무 슬픈 거 있지. 앞으로 엄마, 아빠 딸이 아닌 것도 아닌데 영영 떠난다는 느낌에 나도 결혼을 무르고 싶을 정도였어. 아빠도 그런 느낌이었을까


내가 임신하고 내 생일이 되었을 때 아빠가 보냈던 문자도 기억나? “네가 태어나던 날 오늘처럼 눈이 펑펑 왔어. 얼마나 눈이 예쁘게 오던지. 아빠는 너무 행복해서 뛰어다녔다. 우리 큰 딸, 생일 축하해.” 그날 정기검진이라 병원 의자에 앉아 펑펑 울었어. 산부인과 앞에서 울고 있으니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더라고.

 


딸아이가 태어나서 '엄마'보다 '하부지'를 먼저 말할 정도로 손녀를 정말 아껴주신다.





내가 엄마가 되고 결혼생활이 힘들었을 때 아빠는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오라고 늘 이야기해 줬잖아. 아빠가 먹여 살릴 거라면서. 아빠가 그렇게 해줄 거라는 걸 믿어서 그 시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를 무조건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나에게 힘이 되는지. 아빠는 영원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편이라고 했잖아.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아빠 사랑을 더 받고 싶어. 그러니까 내 곁에 오래오래 건강하게 있어야 해. 항상 받기만 하고 내가 아직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것도 있고. 아빠가 내 아빠라서 너무 좋다는 거 항상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아빠 진짜 정말 많이 사랑해요! 엄마도요! 내가 더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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